[기자의 눈]송상근/ 병원 찾는 게 ´도덕적 해이´?
암환자가 있으면 집안의 기둥이 휜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말기 암환자를 둔 집에선 1년간의 의료비 중 절반을 환자가 숨지기 전 2개월 동안 한꺼번에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나 가족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 못지 않게 경제적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가벼운 질병의 경우 환자의 부담을 늘리는 대신 중증 질환과 고액 진료는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상은 그런 대로 방향을 잘 잡은 것처럼 보인다.
돈이 많이 들고 치료기간이 긴 중병에 걸렸을 때 환자의 부담을 덜어줘야 ‘위험 분산’이라는 건강보험의 원래 기능에 보다 충실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벼운 질병으로 병의원을 찾는 환자가 크게 늘어나 의료서비스 과잉현상이 빚어지자 복지부는 그 이유를 ‘환자와 의사의 도덕적 해이’ 탓으로 돌리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수긍하기 어렵다.
가벼운 감기에 걸린 사람이 약국 대신 병의원을 찾게 된 것은 2000년 7월 의약분업 시행 이후부터다. 복지부는 이를 ‘국민에 대한 의료서비스 향상’으로 평가하고 자랑했다. 또 의료계가 의약분업에 반대하며 총파업에 들어가자 의료수가를 계속 올리면서도 국민 부담이 늘어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동네의원의 환자 부담은 분업 전 18.3%에서 분업 후엔 14.6%로 줄었다. 이에 따라 국민은 가벼운 감기에 걸려도 병의원을 찾기 시작했고 이것이 의료서비스 이용 증가로 나타났다. 그 결과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되자 복지부는 이제 와서 ‘의료서비스 과잉수급’이니 ‘의료기관 쇼핑’이니 하며 이를 환자와 의사의 도덕적 해이로 몰아붙이고 있다.
복지부는 내년부터 동네의원의 환자 부담을 늘리기에 앞서 의약분업 추진이 신중하지 못했음을 먼저 사과해야 한다. 정부가 의약분업을 서둘러 시행하기 위해 국민을 기만했다면 큰 잘못이고 의약분업에 따른 의료서비스 이용 증가를 예상하지 못했다면 이 또한 잘못이다.
복지부가 그 어떤 잘못도 시인하지 않은 채 국민을 탓하는 건 도리가 아니다.
송상근기자 사회2부 songmoon@donga.com
[ 동아일보 11월 9일자 발췌 ]